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경과/요약 (문단 편집) ==== 북부 전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키이우 전투)] 2월 24일 오전, 러시아 공수군이 호스토멜 공항에 공수작전을 개시해 [[호스토멜 공항 전투]]가 시작되었다.[[https://youtu.be/2xVerbh-K5I|#]] 초반의 상황은 긴박했으며 병력의 투입, 러시아군 [[Ka-52]] 헬기의 [[SEAD]] 작전 수행과 비상착륙[[https://youtu.be/oLa3fZD1vXs|#]], 심지어는 격추되는 모습[[https://youtu.be/zJHGNWdwIbw|#]]까지 영상으로 찍히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공항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CNN 기자가 이들의 모습을 취재하기도 했다.[[https://youtu.be/b40r8RX5MoE|#]] 그러나 우크라이나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는데, 이반키우 전투에서 교량을 폭파하며 러시아군 본대에 지연전을 거는 동안[[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20225000474|#]] 제4신속대응여단을 비롯한 증원군으로 기갑 등의 지원이 부족한 공수군을 상대로 공항을 포위하고 24일 저녁에 이를 탈환했다.[[https://www.aberfoylesecurity.com/?p=4812|#]][* 이때 격납고에 있던 [[An-225]] 므리야 수송기가 파괴되었다.] 한편 러시아군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악명 높은 [[체르노빌]]에도 진입했으며, [[프리피야트]]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를 점령했다.[[https://twitter.com/ZelenskyyUa/status/1496862540957114370|#]] 다음 날(25일) 일부 러시아군이 이반키우를 돌파해 디머로 향해 우크라이나 공수군과 교전했으며, 호스토멜에도 러시아군 기갑부대와 해군보병대, 체첸 민병대 등이 도착해 호스토멜 공항을 재점령했다. 이반키우가 26~27일에 완전히 함락되고 전투는 [[이르핀]], [[호스토멜]], [[부차(우크라이나)|부차]] 등에서 이어졌다. 호스토멜과 이르핀으로 진출하려던 러시아군의 기갑 행렬은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무기([[FGM-148 재블린|재블린]], [[NLAW]] 등) 사용에 의해 수송대가 큰 피해를 입으며 수도로의 진격은 저지되었다. 이렇게 전선이 밀리게 되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참수작전]]과 특수전을 방해하면서 당장에 숨쉴 틈을 마련할 수 있었다. 호스토멜 공항에서 러시아군은 공수군 병력을 수송기로 증원하는 데 실패했고, 키이우로 진입한 러시아 공수군의 참수작전도 실패로 돌아갔다.[[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20429/113150412/1|#]] 25일에 러시아군의 사보타주 부대가 우크라이나군으로 위장해 트럭을 타고 침입했지만 도시의 북쪽 구역(오볼론 구)에서 격퇴되었다.[[https://twitter.com/tweetsNV/status/1497105835947966464|#]][[https://twitter.com/Novynarnia/status/1497114865026187264|#]]26일에는 러시아군이 키이우 남쪽 교외에 있는 바실키우 공군 기지를 노려 호스토멜처럼 공수 작전을 개시했지만[[https://n.news.naver.com/article/011/0004023528|#]] 우크라이나군이 격퇴해 실패했다. 그래도 암살과 사보타주, 수도 공격 등의 위협은 여전했기에, 키이우에는 젤렌스키가 수도 잔류를 택하고[[https://youtu.be/u0-Yeqh4PFY|#]] 통금 시간 도입과 함께 전투를 대비해 대규모로 비정규 민병대의 무장이 이루어졌다. 이윽고 러시아군의 본대(정확히는 소수의 특수부대와 침투조 등)가 25일 키이우 외곽에 나타나서 26일과 27일, 키이우 공략에 나섰다. 대부분의 공격이 시 외곽에서 가로막힌 가운데, 일부 러시아군이 [[https://maps.app.goo.gl/vx6QN4JDuhyP5axh8|동물원]] 주변 도심까지 진입하고 [[https://maps.app.goo.gl/nuLpzsXPujJkJUrM9|지하철역]]에 거점을 구축하려는 등 격렬한 전투가 있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키이우 시 방어에 성공했다. 러시아군은 직접적인 공격에 실패하자 해당 공격을 축소하고 도시를 서쪽으로 우회해 교외 마을들인 (앞서 서술한 이르핀, 호스토멜, 부차와) 보로디얀카, 마카리우로 이동하며 포위하려 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르핀 강의 교량을 폭파해 러시아군의 도하를 최대한 저지했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체르니히우 전투)] [[수미]]와 [[체르니히우]]도 전체적인 상황은 비슷했다. 체르니히우에서는 우크라이나군 제1기갑여단의 활약으로 24일 러시아군의 체르니히우 입성이 좌절되었고 25일 러시아군은 도시를 포위하면서 우회해 키이우주로 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수미 전투)] 수미에서는 우크라이나 국토방위군과 민병대의 활동이 두드러졌다.[[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3/jan/02/how-sumy-residents-kept-russian-forces-out-of-their-city|#]] 러시아군은 본래 목표인 코노토프, 수미, 오흐티르카, 트로스얀네츠 등을 점령하는 데 일부는 성공하나 상당히 애를 먹었고 결국 수미 시 점령에 실패하자 우회해 포위를 시도하고 키이우 동부로 향하기로 결정한다. 러시아군 포로도 이곳에서 최초로 생포되었고[[https://twitter.com/h4honour/status/1497495740276518912|#]] 러시아군의 보급난이 최초로 드러난 지역이기도 하다.[[https://www.youtube.com/watch?v=14gVDF2b1vA|#]]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